들어가면서
이 글을 처음 블로그에 업로드 하면서 북한이 '미사일총국'을 신설했다는 이야기를 언급했다. 그렇다. 사회주의 국가에게 있어서 군사의 역할은 사회,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북한 역시도 군사 조직의 신설과 확충은 한국에서 매우 중요하게 바라보는 이슈일 수 밖에 없다. 군사 조직의 신설이라는 정보는 결국 국가의 군사 정책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상대국 입장에서는 대비와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정보'는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결국 '정보'를 다루는 산업이 주요를 이룰 것이라는 사담을 얹으며 북한의 군사정책의 변화를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북한 연구에 있어서 정책 변화 또는 어떤 동향 변화, 시기별 추이를 보기 위해서는 대체적으로 세 명의 시기로 나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시기다. 김정은 시기에 경우 최근까지 (이전과 비교했을 때) 쌓인 데이터가 매우 적어서 특별한 데이터를 확인하기 어려웠으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정도 데이터라는 게 쌓였을 것이라 판단한다. 자주 사용하는 연구 분석 방법이라 초보 연구자들이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김일성 시기
김일성 시기는 한국전쟁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북한군의 규모와 역량은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즉, 전쟁 발발 직전에는 약 20만명 정도였으나 1953년 정전협정 직후 약 30만명 규모로 증가되었고 1955년에는 40만명이 넘는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군사력은 군사무기와 더불어 군인의 수도 매우 중요한 역량으로 손꼽기 때문에 인원의 증가는 분명 강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쯤 중국 인민지원군이 철군하면서 군물자 상당수를 북한에 무상으로 양도하여 장비의 증강이 더해졌다고 본다. 김일성 시기의 대표적인 군사정책은 '4대 군사노선'인데, 1960년대 등장한 4대 군사노선은 중소분쟁 시기 안보의 불안과 인민경제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제한된 자원을 국방에 투입했던, 일종의 국가전략 차원의 군사력 강화노선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4대 군사노선의 세부 목표는 다음과 같다.
이 시기에 북한은 주요 물자와 장비의 독자 생산을 위해 군수산업을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한다. 이 조직은 몇차례의 개편을 통해 오늘날 '미사일총국' 조직을 신설하기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1967년을 전후하여 '제2기계공업성'이라는 군수산업 전담 조직이 신설되었고 이후 개편을 통해 국방과학원과 부문별 무기 및 물자의 생산을 담당하는 수 개의 총국, 수백 개의 군수공장을 산하에 두어 일반경제를 우선으로 한 군수경제를 독자 관할하였다. 특히 전차, 자주포, 장갑차 등의 주요 지상무기체계를 구축하고 잠수정, 고속정 등의 전투함정을 건조 등 독자적인 군수산업 능력을 강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중후반에는 핵미사일 개발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나가는말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지만 북한의 군사정책은 국가의 군사 행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계속해서 관찰해야 할 연구 주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제2기계공업성'은 1972년 무렵 내각에서 분리하여 '제2경제위원회'로 확대,재편되었다. '제2경제위원회'는 각종 무기 및 물자의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국방과학원과 산하 군수공장을 운영하면서 일찍부터 주민의 생활 속에서 군은 사회와 경제를 맡는 기구로 역할하게 되었다. 이것이 정치화되어 김정일 시기엔 '선군정치'가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1980년대 중후반에는 핵미사일 개발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으며 김정일 시기가 되었을 때 1993년 결국 NPT 탈퇴선언을 통해 본격적인 핵개발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북한의 군사력은 확장되었고 결국 김정일 시기에 강화 된 군과 개발된 무기들이 경제난 속에서 어떤 역할로 존재했고 또한 외교적으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본다면 단순히 안보를 수호하는 역할만은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질이 김정은 시기가 되어 또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었는지 그 추이를 살펴보는 것도 재밌는 연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군사가 어떤 성격이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놓쳤다면 필자가 작성한 북한의 군사 ①편을 읽고오길 바란다.
댓글